여행을 하다 보면 계획에 없던 순간이 가장 오래 남는다.
고베에서의 하루도 그랬다.
목적지 없이 걷다 우연히 발견한 조용한 카페, Nosta.
차분한 콘크리트 외벽과 작은 창문, 그리고 안쪽에서 흘러나오던 은은한 음악.

그 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단순히 ‘커피 한 잔 마셔야지’ 정도의 생각이었는데,
그곳은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되는 공간이었다.



고베 Nosta는 산노미야역 근처의 조용한 골목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화려한 간판도, 관광객들의 웅성거림도 없는 그 거리에서
작은 나무 간판 하나가 ‘nosta’라는 이름을 새기고 있었다.

문을 열면 바로 느껴지는 건 커피 향보다도 공기의 온도였다.
따뜻하고 묘하게 고요한 공기,
그리고 나무로 된 테이블 사이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
그 순간, ‘여행 중에도 이런 평범한 시간이 주어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대 앞에는 여러 종류의 원두가 진열되어 있었고,
그중 ‘고베 블렌드’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산미가 부드럽고 고소한 향이 감돌 것 같아 아메리카노로 주문했다.
바리스타가 원두를 갈고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붓는 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느껴졌다.

손에 닿은 컵의 온도, 그리고 첫 모금의 향.
Nosta의 아메리카노는 부드럽고 진했다.
달지도, 강하지도 않은 균형 잡힌 맛.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었다.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바깥을 바라봤다.
고베의 거리엔 낡은 건물과 현대적인 상점이 묘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 중간쯤에 내가 있었다.
낯선 도시의 오후 한가운데서,
커피 한 잔이 나에게 잠시의 안정을 주고 있었다.



함께 주문한 디저트는 ‘레몬 타르트’.
얇게 구워진 타르트 시트 위에 상큼한 레몬 크림이 얹혀 있었다.
포크로 살짝 눌렀을 때 들리는 바삭한 소리,
그 위에 살짝 녹아내리는 크림의 향.
한입 베어물자
달콤함과 산뜻함이 동시에 퍼지며 커피의 여운과 맞물렸다.
달지 않은 레몬의 향이 입안에서 사라질 때쯤,
문득 ‘이 맛은 고베의 오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존재감.

카페 안에는 혼자 책을 읽는 사람, 노트북을 켜놓은 학생,
그리고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연인들이 있었다.
그 누구도 크지 않은 목소리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공간 전체가 서로의 ‘쉼’을 존중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앉은 자리 벽면에는
작은 엽서와 필름 사진들이 꽂혀 있었는데,
그 중 한 장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You can always find peace in small moments.”
(작은 순간 속에서도 평온을 찾을 수 있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Nosta라는 이름이 왜 이렇게 따뜻하게 느껴졌는지 알 것 같았다.

📌 Nosta의 인테리어는 미니멀하지만, 곳곳에 감성이 숨어 있다.
오래된 의자, 손으로 쓴 메뉴판, 잔잔한 재즈 음악.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모든 것이 ‘조화롭게 비워진’ 공간이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기억에 남는 건 거대한 풍경보다
이런 작고 조용한 순간들이다.
Nosta에서 마신 아메리카노 한 잔,
그 향과 온도, 그리고 창밖의 오후 햇살.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기억으로 묶여
지금도 마음속에서 천천히 피어난다.
고베를 다시 찾게 된다면,
관광지가 아닌 이 작은 카페에서 또 한 번
그 잔잔한 평온을 마시고 싶다.